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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 수정 배연우 본격미스터리소설추천 문학동네출간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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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2회 작성일 25-11-15 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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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릭시르의 인스타 신간 제목 맞추기 이벤트에 당첨되어 도서를 선물받았습니다.

탐정, 수정』은 한국 미스터리의 새로운 전환점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무엇보다 놀라운 점은 이 소설이 철저히 장르의 규칙 속에서 논리의 게임을 즐기면서도, 그 게임의 틈새에서 현실과 인간의 감정이 스며나오게 만든다는 것이다. 배연우 작가가 보여주는 세계는 ‘적당한 대학 생활’과 ‘연극적인 추리의 무대’가 미묘하게 겹쳐져 있으며, 그 경계가 흐릿할수록 이야기의 매력은 배가된다. 이 책의 두 주인공, 한유성과 수정은 그 자체로 ‘탐정이란 존재의 의미’를 해체하고 다시 세우는 상징적 인물이다. 유성은 범죄를 설계하며 “논리적으로 해명 할 수 있는” 사건을 만드는 ‘범죄 코디네이터’이고, 수정은 그를 감시하며 ‘진짜 탐정’으로서 진실을 수정한다. 결국 한 사람은 ‘거짓 진상’을, 다른 한 사람은 ‘수정된 진실’을 제시하며 맞서게 된다. 그 대립은 곧 미스터리 장르 자체의 본질적 논쟁 ― ‘추리란 무엇인가’, ‘진실이란 무엇인가’ ― 로 확장된다. “추리란 문제의 해결로 질서를 보위하는 행위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라 거짓 단서와 오도로 문제를 일으키는 심리적 조작 행위일 수도 있구나!”라는 김명남 번역가의 평처럼, 이 소설은 독자를 단순한 수수께끼 풀이의 자리에 머물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독자 스스로가 논리의 틈을 들여다보며, 탐정과 조수의 경계가 무너지는 순간을 목격하게 한다.

탐정, 수정』의 매력은 차가운 논리와 은근한 감정이 함께 흐른다는 점이다. 김은모 번역가가 말했듯 “감정이 배제된 듯 전개되지만 사건의 이면에 숨겨진 감정이 은은하게 배어나오고”, 그 결과 독자는 인물에게 자연스럽게 몰입하게 된다. 특히 수정이 유성을 등지고 “난 탐정 노릇은 하지 않겠어.”라고 말하는 장면은 이 작품의 중심에 있는 감정의 진동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탐정이기를 거부하지만, 동시에 유성을 멈춰 세우기 위해서는 결국 ‘탐정이 되어야 한다’는 아이러니에 스스로를 밀어 넣는다. 이 모순의 감정이야말로 『탐정, 수정』을 단순한 미스터리 이상의 이야기로 만든다.

또 한 가지 인상적인 점은 이 작품이 철저히 ‘본격 미스터리’의 문법을 따르면서도, 그 문법을 유희하듯 비틀어낸다는 것이다. “이제까지 이런 탐정은 없었다!”라는 박하루 작가의 말처럼, 배연우의 세계는 뻔뻔할 만큼 장르적이다. 대학생들이 논리와 트릭을 진지하게 논하고, 현실적인 공간이 연극적 무대로 변하는 방법은 낯설지만 동시에 유쾌하다. 작가는 독자에게 ‘이건 현실이 아니라 추리의 무대’임을 끊임없이 상기시키며, 그 안에서 새로운 게임의 규칙을 제시한다. 그 결과 『탐정, 수정』은 ‘논리의 오락’이라는 본격 미스터리의 핵심적 쾌감을 한국적 정서로 재해석하는 데 성공했다. 각 단편이 보여주는 구성의 다양성도 주목할 만하다. 다섯 편의 이야기는 ‘도서 미스터리, 다중 추리, 클로즈드 서클’ 등 서로 다른 형태의 논리를 탐색하며, 그 논리의 결마다 또 다른 긴장을 만들어낸다. 같은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각 단편의 구조가 달라 익숙해질 틈이 없고, 그렇기에 독자는 매 편마다 새로운 퍼즐을 맞추는 기분으로 읽게 된다.

이 점에서 『탐정, 수정』은 “철저한 이과형 미스터리의 매력이 극한으로 느껴진다”는 평이 전혀 과장이 아니다. 작가가 보여주는 냉철한 사고력은 수학적이지만, 그 논리 속에 깃든 인간관계의 미묘한 감정은 매우 문학적이다. 특히 마지막 단편에 가까워질수록 ‘탐정이 된다는 것’의 의미가 변주된다. 사건의 구조보다 인물의 시선이 중심이 되고, 수정이 “애초에 지금까지 우리가 한 이야기와 그 사건이 실제로 얼마나 연관이 있을지는 몰라.”라고 말하는 장면에서는 현실과 허구, 논리와 감정의 경계가 완전히 무너진다. 독자는 이 대사를 통해 깨닫는다. 결국 이 작품이 탐구하는 것은 ‘범죄의 해명’이 아니라 ‘추리의 존재 이유’라는 사실을.

탐정, 수정』은 그래서 장르의 팬에게는 논리적 유희의 향연이자, 미스터리 초심자에게는 장르의 본질을 이해하게 하는 입문서가 된다. 작가가 대학생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 원숙한 구성력은 더욱 놀랍다. 그는 단순히 트릭을 설계하는 기술자가 아니라, ‘탐정이라는 캐릭터를 어떻게 다시 쓸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사상가에 가깝다. 배연우는 “현실에 탐정은 없다”고 말하는 인물들을 내세우면서도, 그 문장을 통해 오히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탐정이 필요하다’는 진심을 드러낸다. 추리소설이란 결국 인간이 세상의 불확실성과 싸우기 위해 만들어낸 하나의 논리적 장치이며, 『탐정, 수정』은 그 장치를 가장 세련된 진행 방식으로 구현해낸 작품이다. 그러므로 이 소설은 단순한 데뷔작이 아니라, 한국 본격 미스터리의 새로운 문법을 제시한 선언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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